내 딸
딸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이혼을 했다.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이혼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도 이혼을 해야만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내 생각은 그렇다.
먼저 이혼을 말한 것은 그 사람이었다. 어려워진 가정 살림을 위해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고 있었던 내 전 아내가 먼저 이혼을 얘기했다. 전화로. 우리 이혼하는 게 어떻겠냐고. 편하게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내게 이혼을 전했다.
나는 가정에 충실했다.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나는 이혼 당할 만했다. 일한다는 이유로 집밖에서 생활한 것이 집에서 생활한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런 나를 내 전 아내는 다 이해하고 있는 줄 알았다. 양쪽 집안의 갈등을 겪은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내 전 아내는 나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기 위해 이혼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그 어린 딸과 상의했다. 엄마 아빠가 헤어질 것 같다고. 엄마와 아빠가 서로 마음이 안 맞아서 헤어지려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고 딸에게 물었다. 딸은 그렇다면 헤어지는 게 맞는 거 같다고 대답했다. 그 귀한, 그 어린 내 딸에게 나는 이 이상한 질문을 상의랍시고 했다. 그리고 허락(?)을 받았다. 나중에 성인이 된 딸은 자기가 그때 왜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때부터 내 딸의 방랑 생활은 시작되었다. 사업실패로 어려워진 형편에 나는 내 딸과 같이 생활할 수 없었다. 직장 따라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이 계시는 제주도를 시작으로 내 딸은 초등학교를 세 군데를 옮기며 다녀야 했다. 그때는 내 딸에게 미안한 생각도 가지지 못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이기적이고 생각 없는 아빠였다. 고등학교를 기숙사 있는 학교로 진학하고 나서야 오히려 안정되었다. 부모님도 제주도 생활을 정리하시고 내가 있는 안성으로 오셔서 나를 도와주셨다. 내 딸도 안성에 있는 기숙사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이제 조금 안정되어가는 것 같았다. 역시 내 생각이었다. 내 딸은 여전히 방랑 중 이었다.
내 딸은 대학도 역시 기숙사 있는 곳으로 진학해야만 했다. 생각할수록 나는 내 딸에게 못 할 짓을 많이 한 아빠다. 부모의 사랑 속에서 자랐어야 할 그 고운 내 딸의 어린 시절을 나는 어떻게 한 것인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친구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의 생활을 여러 번 반복 했던 내 딸. 나는 나만 외롭고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이기적이고 못 난 아빠였다.
내 딸은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여러 대회에서 상도 많이 탔다. 혼자 객지에서 부모와 떨어져 지내기 시작한 그 시절부터 내 딸의 그림을 볼 수 없었다. 그저 여기저기 자신의 외로움을 표현한 낙서 같은 그림들만 있었다. 내 딸이 언젠가 나에게 이야기했다. 제주도에서의 초등학교 생활은 좋았다고. 그 누구의 간섭도 없었다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너무 잘해 주셨다고. 텔레비전도 아무 간섭없이 실컷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학교 친구들도 친절했다고. 무엇보다 제주도의 경치는 정말 좋았다고. 그런데 그 아름다운 경치를 그림에 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아빠와 엄마가 보고 싶었다고.
엄마가 없었으면 할 때도 있었다고. 텔레비전을 못 보게 할 때. 잔소리를 할 때. 아빠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고. 밤늦도록 텔레비전 본다고 잔소리할 때. 그런데 이상하게도 텔레비전 프로가 재미있을 때, 밤늦도록 텔레비전을 누구의 잔소리도 없이 보고 있을 때, 더 보고 싶었다고.
할머니의 잔소리가 싫지 않기 시작한 것도 이상하다고. 내 딸은 그 어린 나이에 이상한 것들에 억지로 적응하고 있었다.
이혼 전 나는 자주 가지 못하는 집이었지만 집에 들어갈 때면 늘 내 딸을 방부터 들렸다.
밤늦게 집에 들어가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에 내 딸은 항상 자고 있었다. 자고 있던 내 딸을 한참을 쳐다보곤 했다. 그렇게 예뻤다. 그리고 자는 내 딸의 귀에다 대고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곤 했다. '내 딸 사랑해. 아빠는 00이 아빠 딸이라서 행복해. 고마워 내 딸 아빠한테 와 줘서.'
나의 이런 행동을 내 딸은 알고 있었단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 시간이 너무도 행복했었다고. 제주도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내 딸은 언제 다시 아빠의 귀엣말을 들을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아빠가 많이 보고 싶고 그러다가 또 많이 미워지기도 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