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해야겠다.
어이쿠~!!!
나머지 발바닥에 비누칠하느라고 한 발을 들고 비누칠하다가 넘어졌다. 오늘도 나는 모임에 다녀왔다. 퇴근 후 어떠한 모임이라도 참석하는 것이 일과가 되어버렸다. 과음은 아니지만, 술을 좀 마셨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하루하루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헤매는 들고양이처럼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집에 혼자 있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다. 혼자 있는 것에 참 잘 익숙해져 있다. 편하다. 아무도 없는 집, 숨어 있지 않아도 들키지 않는 집. 부끄러움도 숨어버리는 집에 나는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왜 나는 집에 혼자 있지 못하고 저녁마다 나가고 있는 것인가? 학교로, 학원으로, 동호회로, 협회 일로, 학회 일로…. 그래도 도착하는 곳은 없다. 분명 나는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 때문에 굶주려 있는 것이 확실하다. 염치도 없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지금 나는 대한 물리치료사협회 충남도회 회장이다. 대학 졸업하고 국가고시에 합격해야만 받을 수 있는 보건복지부 장관 면허증. 이 면허증을 소지한 회원이 6만 명이 넘는 협회이다. 이 엄청난 협회 한 개 시도에 속한 회원들을 대변하는 막중한 자리라는 뜻이다. 면접 한 번 보지 못하고 서류 전형에서 수없이 떨어졌던 그 야간 담당 물리치료사가….

어찌어찌 한 병원으로의 이직했다. 그곳에서 내 인생의 지도자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재활의학과 전문의 이 00. 첫 만남부터 느낌 있었다. 이기적인 유전자를 타고난 분이다. 집안 환경은 기본이고 잘생긴 외모. 실제 키보다 커 보이는 균형 잡힌 몸매. 인자하지만 설득력 있는 목소리. 친절하지만 가볍지 않은 성격. 부부 싸움을 일으키는 태도(부부 모임을 하고 나면 늘 다른 부부들은 집에 가서 다툰단다. 이 00 원장님 좀 보라고 하면서. 농담으로 우리는 말하곤 했다. ‘남자들의 적이다.’라고. 어떻게 흰 머리카락까지도 멋있냔 말이다! 게다가 직업은 또 의사! ‘세상은 공평하지 않아~!’


14년을 같은 직장에서 생활했다. 지금도 친형님처럼 모시고 있다. 병원 규모가 커짐에 따라 나의 치료사로서의 위상도 올라가고 있었다. 분에 넘치는 직장과 여러 감투. 덕분에 늘 바쁘다. 오늘도 못 먹는 술을 마시고 집에 왔다. 한 번도 잘해드리지 못했던 어머니. 오늘도 내 걱정하고 계시겠지. 아들 잘 지내고 있다고 해야 하는데…. 지금 샤워 중이다. 당연히 나는 알몸. 이런저런 생각 하며 샤워 중, 어~! 넘어졌다! 욕실 바닥에.
다치거나 아프지는 않다. 잠시 그 상태로 있었다.
‘이 집에 나 혼자 있는데….’ 내가….’ 만일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안돼~!!
나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다. 아들 걱정에 늘 마음 힘드신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아들 노릇 한 번은 해야 한다. 혼자 있는 자식 걱정에 세월을 곱으로 견디고 계시는 속이 많이 상한 어머니.

칼 주름 바지에 호랑이 눈으로 기억되는 아버지는 어느새 한쪽 어깨가 기울어져 있다. 그 기울어진 어깨는 내가 누르고 있어서인 것 같다. 그 엄하셨던 아버지가 어깨 처진 아버지보다 더 그립다. 이분도 그냥 가시게 할 수 없다.
나를 위해서, 내 이기적인 욕심을 위해서라도. 당신들에게는 힘들고 피곤한 세월이지만, 조금만 더 버텨 주시면 정말 좋겠다. 이분들에게 한순간만이라도 그 근심에서 벗어나게 해드리고 싶다.
이 두 분보다 내가 먼저 갈 수는 없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객지 생활을 한 보기에도 아까운 내 딸. 사랑하는 사람보다 사랑해 주는 사람 만나서 결혼하라고 부탁하고 있는 내 딸. 결혼식에 같이 가야 한다. 그러기 전까진 난 죽을 수 없다.

“실장님, 이제 결혼하는 게 어때요? 조금 더 나이 들면 하고 싶어도 못해요.” 평소에 친형님으로 생각하고 있는 병원장님 말씀이 생각난다. 사모님께서도 말씀하시곤 했다. “좋은 사람 있어요. 좋은 사람들끼리 만나는 것 보고 싶어요.” 내일 병원 출근해서 병원장님한테 중매 좀 서달라고 해야겠다. 좋은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