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여인들
여러 여자를 소개받았다.. 모두 나에게 과분한 여인들이었다. 혼자 사는 여자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결혼, 그리고 이혼. 이런 과정이 사람 마음을 여러 공간으로 나누어 놓았다. 내가 만난 여인들도 그래 보였다. 기대, 경계, 걱정, 비교….선택되기를 기다리는 진열된 상품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마음은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소개받는 여인들과 결혼하려고 했다. 아니, 여러 여인과 결혼하려 했다는 것이 아니고, 만나는 모든 여인한테 마음이 갔다는 뜻이다. 나는 외로웠다. 어느 여인이라도 나를 취하려고 마음먹었으면 그리됐을 것이다. 나는 내가 만나는 어느 여인의 가벼운 손짓에도 넘어갈 준비가 돼 있었다.
결혼을 전제로 열심히 만났다. 동거부터 해보자는 여인이 있었다. 나로서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리 있는 제안이었던 것 같다. ‘먼젓번 결혼에 얼마나 상처가 있었으면….’첫 결혼도 그랬지만 나는 결혼에 늘 신중하지 못했다.
느낌. 느낌이 오면 다른 사람이 안 보인다. 앞으로 내가 결혼 상담을 하게 되면 ‘결혼 전 동거’가 추천 항목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깟 문화적 충격(?)과 나의 위선이 매력적인 여인을 보내 버렸다.
“그 정도 연봉이시면 올라오셔서 제 일 도와주시면 좋겠네요.” 서울에서 큰 식당을 운영하는 여사장님이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후회한다. ‘그때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인데….’
내 인생의 멘토, 00 병원장님 사모님이 소개해 주신 분이다. 아들이 중학생인데 내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처음 만난 날 나에게 한 말이다. 나를 잘 모르고 하신 말씀이다. 내가 얼마나 속 좁고 이기적인 사람인데. 적어도 사람 보는 눈이 그리 깊지는 않으신 좋은 분이시다. 그 당시에는 나 자신은 들키지 않고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노력할 때이다. 당연히 과분한 말씀이다.
차(BMW) 한 대 있는데 주차장에 그냥 서 있다고, 내가 타면 좋을 것 같다고…. 이 제안에 어처구니없게도 나의 자존심이 발동했다. 좀 더 신중했어야 하는데 나는 이미 이 여인은 아니라는 건방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시 이런 제안이 온다면 최대한 정중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한 여인은 딸이 있었다. 중 2. 나는 중 2와 인연이 많은가 보다.. 참 밝았다. 아빠 없이 엄마와 사는, 한창 예민할 때인데 참 밝았다. 몇 번의 함께 데이트가 있었다. 아이가 참 나를 잘 따랐다. 엄마를 위한 마음이 나를 좋게 보게 했을 것이다. 아빠에 대한 목마름도 한몫했고.
모든 면에서 나보다 훌륭한 여인이었다. 이대로 가정을 꾸려도 좋을 것 같았다. 왜 헤어졌지? 기독교도(나는 과분하게도 교회 집사 직분이 있다.)인 내 생각에 인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종교가 다르면 쉽지 않다는 주변의 조언에 힘 받아서 감히 나는 그 여인에게 헤어짐을 안겨줬다.
“우리 집안에 아들이 생긴다면, 우리 어머니와 아버님이 좋아하실 겁니다.!” 사실이었다. 우리 집안에 아들이 없었다. 내 어머니는 내가 평생 홀아비로 지날까 봐 노심초사였다. 내가 만나는 여자가 있고, 아이가 하나 있는데 사내 아이고 7살이라고. 그런데 그 아이는 아빠를 보지도 못했다고. 어머니는 그냥 내 아들로 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아이가 아직 어리니 그렇게 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이상하게 마음이 시렸다. 어느덧 중년인 내가 어머니에게는 아직도 물가의 아이라는 생각에 정말 미안하다.
이번에도 나는 건방졌다. 나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은 아빠, 절대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 눈에 예뻐 보였다. 나의 건방짐도 한몫했다. 내가 이 여인과 아이에게 괜찮은 사람이라는 막연한 자신감에 적극적으로 결혼을 향해 나갔다. 오바마 대통령도 새아빠가 있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나도 미 대통령의 새아빠처럼 아이에게 잘해보겠다고, 아이를 잘 키워보자고 입바른 소리까지 동원했다.
나의 무모한 자신감과 외로움이 그녀에게 통했다. 그리고 결혼했다.